본문 바로가기
☆ 일상/커피향기

추석

by 일계(一界) 2012. 10. 9.
 

 

추석..

안동. 남선면 우리 친정의 추석은 그야말로 거대한 명절이었다. 안동의 작은 가문의 종가. 엄마는 늘 추석준비를 문종이 바르는 일로 시작하셨다. 격자문을 다 떼네 물을 발라 묵은 문종이를 떼내는 일로 시작해 풀을 쑤고, 새 문종이를 발라 손잡이 부분에 국화꽃 장식을 하고 볕좋은 마당한켠에 말려 두셨었다. 하얀 이불을 뜯어서 삶아 빨아 풀 을 먹이고 다시 기워서 차곡차곡 개켜놓으시 는일도 늘 추석전에 하시던 일이었다. 안방문 에는 깨진 유리조각으로 조그만 창도 하나 내 셨다. 아버지는 선산을 다니며 벌초를 하시 고, 마당을 정리하시고, 산에가서 밤을 따서 오시고, 제일 보기좋은 곳에 잘익은 감을 땃 고, 대추를 따서 말리시는 일을 하셨었다.

울 엄마가 제일 정성을 쏟은건 추석음식이었 다.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제사음식은 꼭 소고기 좋은 부위로 꼬지를 끼셨고, 제일 물 좋고 큰놈으로 간고등어를 골랐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튼실한 문어를 처마에 매달아 두셨다. 그리고 제사음식은 절대 흥정을 하거 나 깍지않는 엄마만의 강한 신조가 있었다. 나물도 추석에 맞춰서 길렀고, 봄에 산에 오르내리며 뜯는 고사리는 오로지 제사를 위한 것이었다. 제사음식을 장만하면서 늘 중얼거리셨다. " 내가 기댈곳이 어딧노, 조상밖에, " 지금도 집안에 좋은일이 있으면 제사를 정성 스럽게 잘 지내서 조상이 돌봐주신 덕이라고 굳게믿으신다. 지난 총선때 막내오빠가 낙선 하던날 엄마가 내 뱉은 첫마디도 그거였다. " 이제 느그 아부지 제사 안지낼란다. 아들뒤도 안봐주는 아부지 제사 머하로 지내노"

추석날이 되면 타지에 계신 작은아버지들 부터 집에 오셨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아버지 형제들의 우애였다. 삼형제 의 장남인 아버지와 동생들은 일년에 한번 며 칠동안 같이 계시면서 두런두런 일년간있었던 일을 얘기하시고, 제사음식을 같이 장만하시고, 고향이 그리운 감수성 깊은 막내 작은 아버지는 때로 눈물을 보이신적도 있으셨다. 이제 아버지는 돌아올수없는 곳으로 가셨지만, 나이든 형제가 모여앉아 정답게 얘기하는 모 습이 지금도 선하다. 추석 복잡한 연휴가 지 나고 가시는 작은아버지 손에는 늘 엄마가 준 볶은깨, 참기름보따리가 들려있었고 동구밖 을 몇번이고 뒤돌아보며 작은아버지들이 엄 마한테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손사레를 치고, 아버지는 저 멀리 사라지는 작은아버지 모습 을 뻔히 바라보고만 계셨다.

밤늦게까지 전을 부치고, 온동네에 기름 냄새 풍기는걸 미덕으로 아셨던 엄마가 새우잠을 자고 일어난 추석날 아침이면 온 집안이 부산하다. 성묘를 할 음식을 산소별로 나눠서 하얀 종이에 말아 붉은 노끈으로 싸는일부터 시작 해 과일, 제기, 술, 돗자리까지 그 모든것을 준 비하고 곧 들이닥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아침을 먹고나면 그동안 객지에서 생활하던 일가친척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성묘준비를 하면 서 들이닥치는 손님의 안주거리를 준비하고 엄마에게 건네는 인사 또한 받아야했음에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하셨다.

오전 여덟시가 넘으면 오십명쯤 되는 일가친 척들이 마당에 모였다. 이때가 종가집 장손인 아버지 위엄의 초절정이었다. 오십여명의 남 자들은 아버지를 향해 주목을 했고 아버지는 그해 추석도 별탈없이 모두 모여준것에 대한 인사말을 하고 결혼으로 새가족이되었거나 그동안 오지않다가 오기시작한 청소년등 새 식구에 대한 소개를 했다. 우리집 산소는 먼 산(집에서 한시간~두시간 걸어가야있는 멀리 있는산)부터 가까운 선산까지 고루 있었기 때문에 모두 한꺼번에 갈수가없었다. 그래서 먼 곳의 산소를 몇팀으로 묶어 한팀에 5~6명을 배치를 했는데 그 권한은 오로지 아버지에게 만 주어진것이었다. 좀 멀리 거친 산에 갈수도있고, 비교적 가까운 편한 산에 갈수도있는 데 아버지가 정한 일종의 룰을 거역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던것같다. 아버지가 정해준대로 산소를 배치받고, 성묘음식과, 술을 받아들고 낫을 챙겨 무리들이 떠나면 엄마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 리셨다.

먼산에 성묘를 하러가던길. 오빠와 언니가 타지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전 막내인 나는 엄마와같이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기제사때는 제사상을 차리고, 추석성묘길 은 굳이 같이 안갔어도 되는데 먼산 산소 성 묘길을 꼭 따라나섰었다. 산을넘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작은 오솔길이었고, 뚝방길 너머 엔 하늘을 빨아들인 큰 저수지가 가을이면 눈이 시린 파란색 빛을 발하고있었다. 이효석의 글처럼 숨이 탁탁 막히도록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큰 메밀밭을지나, 빨간 홍옥이 탐스런 과수원을 지나, 갈대밭을 지나 몇시간을 걸어서 내가 알지못하는 낯선 산으로 깊숙 이 올라가면 우리 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 의아버지의아버지 묘가있었다.

사람들이 사라진동안 엄마는 부엌정리를 하 고 흩어진 집정리를 대충하고, 또 점심을 준비하셨다. 몇시간이 지나면 성묘갔던 그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오십여명 넘는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웠던 엄마는 늘 제사음식과, 나물을 모아서 비빔밥 을 그릇그릇 비비셨고, 성묘를 하고 돌아온 남자들은 그 음식을 맛있게도 드셨다. 점심을 먹고나면 뒷산에 있는 가까운 조상에 성묘를 하러가는 일이 기다리고있다. 비교적 젊은 남 자들이 지게에 제사음식을 지고, 어린 남자들은 양은 주전자에 술을 들고, 한무리의 사람들이 일렬로 산으로 오른다. 가까운 산에 성 묘까지 끝내면 캄캄한 밤이다.

내가 결혼한지 20년. 그동안 추석날 친정에 간적이 없기때문에 지금은 그 풍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작은아버지 한분이 돌아가시고, 엄마는 팔순이 되었고, 권한보다 책임이 많은 장손으로서의 역할은 큰오빠가 물려받았고 추석음식도, 제사음식도 기력이 딸린 엄마를 도와 대부분 큰 올케가 하고 계신다. 시댁에 다녀와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마흔명넘게 집에 모였었다고 하시는걸 보니 아직도 추석 손님들은 변하지 않고 오는가보다.

추석. 내가 결혼하기전의 기억이다. 지금도 크게 변했을것같지않은 친정의 풍경. 때론 그립고 때론 한번만 그 속으로 들어가보 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

너무 멀리 시집을 왔다보다. 푸하하..

 

                                                                    - 하나뿐인 여동생 페이스북에 올린 글 옮겨오다 -

'☆ 일상 > 커피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12.10.14
잡은 손  (0) 2012.10.13
시월에  (0) 2012.10.01
가을  (0) 2012.09.24
꽃편지  (0) 2012.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