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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커피향기

그리움

by 일계(一界) 2017. 4. 11.

그리움은 끝이 없어라....



엄마는 피부는 곱디 고우셨으나 미인은 아니었다. 얼굴은 각이졌고 콧대도 낮았으며 웃지않으면 매우 고집스러워 보였었다. 한마디로 내가 닮고 싶은 얼굴은 아니었는데 가장많이 들은말이 엄마닮았네 였다.

시내 국수집 사장 큰딸로 태어나 그시절 명문인 안동여고를 다니셨는데 어쩌다가 깊고깊은 산골 백일마을로 시집을 오게되어 가난하디 가난한 가문의 종부가 되셨다. 시집와서 제사를 모시는데 쓸만한 그릇이 없어 이웃집으로 꾸러 다녔다고 했고 한푼두푼 모은돈으로 간장 종지라도 하나 살라치면 할아버지와 아부지에게 작살나도록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돈이 없어도 언제나 즐겁고 낙천적인 아버지와 반대로 엄마는 매우 현실적인 분이었다. 절약할래야 더이상 절약할수 없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시골 작은 가문의 종가집엔 손님이 끊임없었고 엄마는 어쨋든 그 손님들을 섭섭하지 않게 대접해서 보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자식들의 학교에 직책이란 직책을 다 맡아 행사때마다 해야하는 선생님들의 도시락 준비도 거뜬히 해 오셨다. 어떻게 마련했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올땐 우아한 한복이나 멋진 맞춤 양장을 한 신여성으로 나타나 남부럽지않은 모습을 보이셨다.

엄마는 사람집엔 사람이 많이와야 흥한다면서 손님대접은 매우 정성들여 했고 손이 작으면 못쓴다고 뭐든지 과하게 많이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오남매가 남부럽지않게 잘 먹은 기억은 엄마의 큰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엄마는 그 옛날 어른들이 다 보던 점이나 사주 같은건 전혀 보지않았고 자식 다섯명을 결혼시킬때도 궁합한번 보질 않으셨다.

마음씨 좋은 아버지는 뭘 빌려줘도 달라는 소리를 못하는 반면 엄마는 뭐든 악착같이 받아냈고 반면 줄것은 칼같이 돌려줬다. 남의것을 부러워는 했지만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점잖함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좋아했는데 시내에 동춘서커스가 오면 한복 차려입고 고무신 신고 들떠서 구경을 가셨었다. 몇년전 경로잔치 노래자랑때는 인기상 부상으로 큰 주전자를 받아오는 저력도 발휘하셨다.

엄마는 다정하게 말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받고 미움도 많이 받으셨을 것이다. 그런 성격임에도 다른사람과 싸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고 특히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않고 자랐으며 자식들에게 심한말을 하지도 않으셨다.

엄마 말대로 사는게 바빠서 좋은 생각도 많이 못하셨을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돌아가시기 전까지 좋은 생각만하라고 얼마나 엄마를 다그쳤는지 모른다. 몰라서 그랬을까.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그랬겠지. 네살때 엄마의 엄마를 여의고 학교를 다니다 말고 가난하디 가난한 산골에 시집와 자식 다섯명 낳고 그 자식들 가르치고 대접 받고 살아라고 그 책임감에 악착같이 사느라 그랬겠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죽음길에 호사는 끝이 없이 들어선 화환이었다.
쓸쓸하지 않은 장례였다.
아버지 옆에 엄마의 무덤이 다정해 보였다.


동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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