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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커피향기

思母曲

by 일계(一界) 2017. 4. 13.




어릴적 우리집 특식은 찰떡이었다. 안동가면 관광상품으로 파는 버버리찰떡 바로 그것이었다. 아버지가 큰 가마솥에 불을 지펴 삼베 보자기를 깔고 찹쌀을 찌는 동안 엄마는 팥을 삶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찹쌀을 침대받침만한 안반(=반죽을 하거나 떡을 칠 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에 질퍼덕 놓으면 아버지가 떡매를 들고 떡매질을하고 엄마는 아버지가 떡매를 내리치는 사이사이 물묻은 손으로 점점 떡으로 변해가는 찹쌀을 뭉치고 뒤집고 하는 기막힌 팀웍을 보이셨다.

떡매로 곱게찧은 찐 찹쌀을 넙적하게 펴고 가지런히 썰어 팥고물 콩고물 두가지를 묻혀 놓으면 찰떡과 환상의 조합인 동치미 국물이 따라나왔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입에 들어가는 철떡을 보면서 오늘 골미미해라고 하시면서 엄청 웃으셨다 (골미미=뱃속을 매우 든든하게 채움. 허기짐을 채움을 뜻하는 방언) 시간이 지나단단하게 굳은 찰떡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 먹으면 그 맛 또한 기가 막혔다.

...안반가득 찰떡을 만들어놓고 마당에서 온가족 둘러앉아 입가에 콩가루를 묻히고 먹으며 웃던 엄마 아버지 웃음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오는듯하다.

우리집 넓은 안반은 다용도였다. 엄마는 밀가루 콩가루를 섞어 만든 반죽을 안반에 올려놓고 긴 밀대로 밀어 국수를 만들었다. 밀대미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반죽은 넓고 얇게 퍼졌고 넓은 반죽위로 휙 뿌리는 엄마의 밀가루 뿌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미슐랭 쓰리스타급 셰프의 모습이었다. 얇은 반죽은 돌돌말아 손국수로 썰었는데 안반위에 일렬종대로 있던 자로 잰듯한 굵기에 일정한 간격의 국수 가락은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엄마는 반죽 맨 끝 꼬투리를 숯불에 구워 나눠 주셨는데 요즘 참크래커 같은 그것을 가지고 다니며 과자처럼 먹었었다.

어릴적 고기 간식의 대부분은 닭이었다. 봄에 안동장날가서 사온 병아리를 풀어넣으면 여름지난 즈음엔 먹기좋을만큼 자랏던것 같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기 자식들의 영양보충엔 집에서 기르는 닭만큼 가성비좋은음식이 없었다. 아버지가 닭모가지를 비틀어 마당에 던져놓으면 아직 목숨줄이 끊어지지않는 닭은 저 만큼씩 가면서 푸드덕 거렸고 엄마는 우물가에서 뜨거운 물로 닭털을 뽑을 준비를 하고계셨다.

큰솥에 닭을 넣고 삶으면 닭다리와 고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기름 둥둥 뜬 닭육수에 찹쌀을 넣은 닭죽은 가족 모두가 나누어 먹고 닭똥집은 소금을 뿌려 석쇠에 넣고 슻불에 구워먹었다. 요즘은 1인1닭 시대라는데 그 시절엔 일곱명의 가족이 닭한마리로 풍족하게 먹고 행복에 겨웠었다. 거기다가 잡은 닭 뱃속에 혹시나 영글다가 만 노랑 달걀이 몇개 들어있으면 횡재나 한것처럼 즐거웠었다.

가을에 익은 누렁호박은 여러통 방안에 차곡 차곡 쌓였었다. 엄마는 호박 어떤 부분은 팥을 넣은 호박범벅으로 변신시켰고 어떤 부분은 쪄서 콩가루를 묻혀 먹는 간식을 만들었다.

겨울밤엔 안방 윗쪽 한귀퉁이 자루속에 들어있었던 생고구마를 깎아 먹었고 더 추운 한겨울밤엔 마당 구덩이에서 무우를 꺼내 깎아 먹었다. 방에 떠놓은 대접에 물이 얼 정도로 외풍이 심한 방엔 아침이면 세숫대야에 먹다남은 무우조각이 있었고 가끔씩 배추뿌리도 깎아 먹었는데 무우보다 섬유질도 많고 달고 맛있었던것 같다.

학교마친 오빠들이 소꼴을 베어오고 저녁이면 불을지펴 소죽을 끓였는데 그 속에 넣어 같이 익혀먹던 구수한 냄새나는 콩, 아궁이에 남은재로 구운 감자,고구마도 있었다.

엄마는 손도 크지만 음식하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 한달에 한번이상 있는 제사를 정성껏 차리기도 했지만 기제사 준비쯤은 누워서 떡먹기로 차렸다. 자시에 지내는 제사음식 꼬투리라도 먹으려고 꾸벅꾸벅 졸며 자정을 기다리다가 제사음식 차리는것도 못보고 잠들어 깬 아침엔 엄마의 솜씨좋은 제삿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음식솜씨가 빛을 발할땐 국민학교 운동회와 소풍때였다. 삶은밤 삶은 고구마 맨밥에 평일보다 조금 더 특별한 반찬이 더해지던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나 소풍날 우리 엄마는 김밥을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게 쌋는지 모른다.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펼쳐놓으면 봄꽃처럼 화사했었다. 오남매중에 누구하나 소풍을 가면 온가족 김밥을 먹는 황홀한 날이 되었고 색소입힌 진주햄소세지가 흰 쌀밥을 분홍빛으로 물들게 하던 그 김밥 나무 도시락을 엄마는 학교 선생님 몫까지 모조리 싸서 보냈었다. 하얀 쌀밥위로 알록달록 예쁜 김밥 속재료들이 놓이던 날 온 집안에 퍼지던 참기름냄새사이로 우리 오남매의 웃음소리도 햇살처럼 퍼져나갔다.

자식들 학교 다 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고 편히 살날을 기다리던 엄마는 되돌아보니 어렵게 살던시절 자식들 먹이기도 바쁜시절 그 시절이 제일 좋았던것 같다고 넋두리처럼 말했었다.

세월이 흐르긴했지만 엄청 오래전 일도 아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풍족한 요즘 시절,
각자가 가진 추억도 풍부할 것인가.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이 밤에
엄마가 자식을 생각했던 그 많은 밤은
얼마나였을까.


동생이 페이스북에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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